방심하면 느껴지는 언어 퇴화

한국 일상

방심하면 느껴지는 언어 퇴화

danangsurfing_mia 2021. 10. 2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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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다시 외국에 나가 살 일이 생긴다면, 그땐 반드시 좋은 책을 서너 권 챙겨갈 거다.

 

번역된 소설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 다듬어 쓴 좋은 글귀가 가득한 책으로.

 

 

 

 

 

길고도 짧은, 그러나 눈부셨던 3년간의 다낭 생활이었다. 외국이라는 자체가 주는 해방감은 코로나가 심각한 지경에도 귀국하길 꺼려하는 이유였다.

 

향수병이랄 것도 없었다.

 유튜브나 TV로 한국 프로그램은 마음껏 볼 수 넷플릭스로 한글 자막도 붙여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가끔 통화하는 가족들과, 늘 메시지가 오가는 카카오톡,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은 반은 영어, 베트남어, 한국어가 풍성했다.

다만 먹방이, 신메뉴가, 새로 떠오르는 맛집을 갈망했다(그 갈망이 결국 요리도 더 잘하고, 사워도우 빵도 만들어 굽는 결과를 만들었다.) 식탐과 함께 식욕이 왕성해졌다.

 

 

그리고 지금.

자가 격리도 마치고, 운 좋게 들어온 작은 직장에서 내 공간 밖의 사람들을 만나며 생각보다 잘 굴러가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에서, 나는 한국인인데 왜 이렇게 말을 잘 못하나 싶어 황당할 지경이다.

 

지금 내가 알아차린 퇴보의 영역은

1. 단어가 생각 안 나서 길게 설명하듯 말한다.

2. 적절한 영어단어가 먼저 전두엽을 때리는 바람에 그걸 해석할 한글을 골라야 한다.
   (근데 이게 생각보다 어렵다. 통번역하는 분들 정말 존경스럽다.)

 

<1번 예시>

다낭에서 락다운이 동네 카센터 문 닫는 것만큼 잦았던 때 우연히 내 또래의 교민을 만나 코로나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 코로나가 계속 안 끝나서 락다운이 자꾸 postpone 하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는 와중에 postpone을 한국말로 바꿔야 해서 버벅거리다 결국

코로나가 계속 안 끝나서 락다운이 자구 안 끝나는 것 같아요. “.“

라고 했다.

그러자 상대방이
네 맞아요. 너무 장기화되는 것 같아요. 락다운도 자꾸 연기되고...”라고...” 했다.

 그 순간 그녀가 그럴 의도였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장기화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났고,, 그래서 쓰지 못했고,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가 왜 튀어나와서 나를 버벅거리게 하는지, 한국 사람이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다니, 창피함, 당황스러움, 좌절감, 자괴감이 동시에 몰려와 볼이 뜨거웠다.

물론 이 충격은 조용히 집으로 가지고 돌아와서 곤쌀로에게 하소연했다. 이건 내 평생의 이불 킥 소스다.

 

<2번 예시>

나는 서핑을 영어로 배웠다. 영어로 수업을 듣고, 서핑에 필요한 단어를 영어로 체득했다. 서핑스쿨에서 일하면서 생기는 궁금증,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들, 안내해야 할 것들도 자연히 영어로 먼저 듣고, 외국인에겐 그걸 그대로 앵무새처럼 영어로 안내했다.

가벼운 이야깃거리는 괜찮지만 가끔 한국인들과 서핑에 대해, 특히 안전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적잖게 버벅거렸다. 도무지 그 단어를 설명할 적절한 한국말을 몰라서였다. 그럴 때마다 곤쌀로는 소리 없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She’s not Korean. She’s Chinese.”
그때만 해도 한국에 서핑 붐이 시작되던 때라 영어를 한국어로 그대로 옮겨 쓰는 사람들도 많았고 서핑과 관련된 한국어로 된 정보가 많지 않았다.

High tide, low tide 는 쉬운 편이다. Paddle, gliding, rip current, (sea) channel은 명료하게 설명할만한, 설명과 적절히 어울리는 뜻을 찾지 못해 아직까지도 영어로 쓰고 있다.
(다행히도

 

 

소싯적의 내가 명문가(名文家)까지는 아니지만 적절하게 말하고 쓰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그럼 다낭에 있는 동안 썼던 영어가 유창해졌는가? 그건 또 아니다.

 

서핑스쿨, 해변이라는 공간에 나는 직원이라는 신분으로 있다 보니 내 대회의 주제는 그리 다양하지 않다. 늘 주고받는 안부, 날씨, 서핑스쿨 이용에 관한 이야기 등이 대부분이다 보니 쓰는 단어와 표현이 한정적이다.

게다가 영어 강사로 일하던 원어민들을 만나다 내 기준에 ‘신토불이’억양 가진 외국인을 만나면 사실 반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제 외국어를 새 언어 배우듯 주의를 쏟아 대화하기란 체력적으로 무척 버겁다. 나중엔 두통이 생길 정도니까......

또 늘 같이 지내는 곤쌀로와 영어를 사용해 대화했지만 둘 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쓰는 표현들이 날이 갈수록 빈곤해진다. 어쩌다 미드나 영화, 다큐멘터리라도 보는 날에는 단어의 풍요 속에 지내다가 또 그런 대화거리를 잃게 되면 늘 반복되는 일상의 언어들만 사용한다.

 

 그럼 베트남어는 잘하느냐??

 그렇지도 않다. 제대로 베트남어를 배워본 적은 한 번도 없고, 시장에서 돈을 정확히 주고받기 위해 숫자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다. 일을 많이 할 적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상권이 많아서 굳이 베트남어를 몰라도 거의 모든 게 다 해결되었지만,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이 길어지면서 생활비 절약의 목적으로 로컬 시장과 페이스북 마켓을 이용하다 보니 베트남 어가 약간 늘긴 했다.

그렇지만 몇 년의 베트 남살이 와 사는 동안 만난 친구들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정말 완벽한 베트남어를 구사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내 베트남어를 못 알아들을 확률은 거의 80%이다.

이 얘기는 나중에 한 번 더 해야겠다.

 

 

아무튼 그래서 요즘 종이 책을 사서 읽으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스크린에 너무 중독된 탓이요, 그래서 종이 책 활자가 덜 재미있다 생각하는 탓이요.

마지막으로 벌써 중학생 때부터 느낀 책을 읽으면 유별난 행동이다라고 체득된 나의 고정관념 탓이다.

 

 

결론은 책 만세! 만세! 만세!!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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